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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수치의 역사 신사참배 결의 80주년에 서서 1938. 9. 9~2018. 9. 9

히브리서 11:6, 35, 38 /  김철봉 목사(사직동교회/ 전임고신총회장)  출처 : 기독교보 2018.09.04

 

신사참배는 한국교회가 남긴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미화하고 화려한 것만 부각시켜서는 안됩니다. 정직한 역사공부는 실수하고 수치스러웠던 역사까지도 정확하게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사참배 결의에 관련한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며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독일처럼 정직한 나라는 부끄러운 역사라도 드러내어 교훈을 삼지만 일본 같은 나라는 수치스러운 역사는 가급적 숨길 뿐 아니라 수치를 오히려 미화시켜 후손들에게 잘못 가르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대 문제와 같은 것들 입니다. 한국과 아시아의 젊은 여성들을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비참하게 인권을 유린하고도 일본은 공식적으로나 국가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양심 있는 학자들이나 일부 사람들만이 오히려 일본의 만행과 전쟁범죄에 관한 역사적인 자료를 발굴하면서 자기들의 정부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한국사람 입니다. 한국 사람이기에 우리의 수치스러운 역사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 번째로는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피면서 신사참배 문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역사는 <기록>되어야 하고 <기억>되어야 합니다. 역사가들이 어떤 사건을 기록을 해도 자손들이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기록을 열심히 남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후세들이 공부를 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영국의 토인비 교수는 역사를 망각하면 실수가 되풀이 되고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실수를 되풀이 하는 것은 개인 뿐 아니라 국가 마저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4-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모세대는 정확하게 배워야하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사참배 80주년을 기억하면서 이런 특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이 삼국시대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책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고려사,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탁월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참 훌륭합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좋지 않은 면들도 있습니다. 망각의 병과 분열과 정쟁의 병입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이 지난 36년간 우리나라를 지배할 때에 이 전략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우리의 약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임진왜란(壬辰倭亂)입니다. 각 당파의 입장에 따라 적전분열(敵前分裂)함으로 전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병자호란(丙子胡亂)도 마찬가지입니다. 1636년에 청나라가 쳐들어왔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똑같은 어리석은 일을 반복했고 결국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50년 전 선조가 압록강까지 도망했던 것처럼 인조도 남한산성으로 도망했습니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죄수의 옷을 입고 청태종 앞에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명령을 듣고 무릎을 꿇어 이마를 땅에 닿게해서 세 번 절하는 것)를 해야 했습니다. 침략자 청나라는 물러나면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했고 그 결과 많은 젊은 여인들이 공출되어 힘든 삶을 견뎌야 했습니다. 후에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환향녀(還鄕女)’라는 이름으로 고통 받아야 했습니다. 실로 이 환향녀(還鄕女)’라는 슬픈 이름은 우리나라의 수치스런 역사가 만들어낸 고통의 어휘입니다.

 

일본에게 당한지 400년 만에 다시 한번 꼭 같은 일을 당했습니다. 바로 1905년에 있었던 을사늑약(乙巳勒約)입니다. 그리고 1910년에 굴욕적인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36년간 우리나라는 일제의 말할 수 없는 학대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교육이 약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실패와 실수가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조선 예수교 장로회의 역사 역시 눈 여겨 봐야 합니다. 1866년 토마스 목사님이 뜨거운 가슴을 안고 한국에 선교하러 왔습니다. 한강으로 오려고 계획했었는데 뱃길이 잘못되어 대동강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배는 화공으로 불탔고 26살의 젊은 영국청년 토마스 목사님은 관군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 일 후에 1884년 미국에서 의사 한 분이 들어왔는데 그 분이 알렌 선교사입니다. 알렌선교사는 서울에 세브란스병원을 세웠고,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들어와서 연희전문학교를 세웠습니다. 후에 이 둘이 합쳐져 연세대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191291일 평양에서 처음으로 장로교총회가 열렸고 총회가 열리기 전 1907년에 한국 최초의 목사 7(서경조, 한석진, 이기풍, 송린서, 방기창, 길선주, 양전백)이 장립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불같은 헌신으로 교회가 부흥했지만 193899일 한국교회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9389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27회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요 안건으로 일본이 요구하는 신사참배 참여 안건을 평안노회가 헌의했습니다. 이 때 총회장은 평안노회 홍택기 목사였고 마지막까지 반대한 것이 바로 경남노회였습니다. 평안노회는 신사참배를 주도했고 경남노회는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역사를 놓고 보면 평양이 공산당의 소굴이 된 것과 6.25전쟁 때 부산 마산이 안전했던 것이 과연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당시 헌의안의 내용은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國民儀禮)이기 때문에 양심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고,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안 노회가 이 안을 상정했고 일본 군대와 경찰의 억압 속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총회장은 () 합니까?’ 물은 후에 () 하시면 아니오 하십시오를 묻지 않았습니다. 모든 회의에서 사회자가 어떤 안건을 묻고 결정할 때 올바르게 가부를 묻지 않으면 그 결정은 무효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합니까?’ 물은 후에 () 하시면 아니오 하십시오를 묻지 않았습니다. 사회자가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모인 총대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반대하던 경남노회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주기철, 한상동, 손양원 목사 등은 일제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감옥이나 구치소로 예비검속되어 발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미국 선교사이던 한부선 선교사가 용감하게 일어서서 회장! <아니오>를 묻지 않습니까?”라고 큰 소리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곧 일본 경찰에 의해 회의장에서 내던져지고 말았습니다. 한부선 선교사는 이 일로 추방 당해 본국으로 귀환했다가 해방 후에 다시 돌아와 고려신학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는 나의 5대 각오라는 설교를 하면서 대동강아 모란봉아 나와 함께 울자하며 탄식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스스로 정절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마지막으로 주기철 목사는 평양감옥에 끌려가서 해방 직전 옥중에서 순교했습니다.

 

해방 후 이 큰 죄를 공적(公的)으로 회개하고 정리할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출옥성도였던 손양원, 한상동 목사는 자숙안을 헌의했으나 총회는 거부하고 도리어 경남노회 총대들의 자격을 박탈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뿐 아니라 1951525일 부산중앙교회에서 열렸던 전국 장로교총회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것에 앞장섰던 경남노회 총대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어용으로 경남노회를 만들어 회의를 진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때 총회에서 축출된 목사님들이 어쩔 수 없어서 뜻을 맞춰 신학교를 세우고 가꾼 것이 바로 오늘 날 고신총회입니다. 이들은 감옥에 갇혔을 때 타협하는 말 한 마디만 했더라면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정절과 정통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선배들이 우리에게 보여 준 아름다운 흔적입니다. 이 흔적은 우리 고신교단을 통해 이어졌고 결국 오늘날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일제 강점기와 같은 강제, 강요, 박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성경해석과 자의적인 판단으로 자신을 주장하는 말세적 신형 신사참배가 예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그릇된 성경해석과 자의적 판단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사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21:25).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다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왕이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이런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 사직동 교회는 마지막까지 한국교회의 신앙의 정통, 신학의 정통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성도들이 깊은 결단을 내리고, 우리의 젊은 세대부터 신앙교육을 잘 받고 또 잘 전수하여 조국교회를 파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다가올 역사에서 승리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후 2018. 8. 26 주일 저녁 특강

기독교보 ks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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