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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장로님,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서평

최고관리자 13-06-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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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장로님,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서평

 

장로님, 제가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

 

고신역사연구소 연구원 김흥식 목사

 

김경래 장로님의 구술과 백시열 선생님의 정리로 출간된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는 한국기독교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양서이다. 단순하게 김경래 장로 개인의 삶을 회고하는 자서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한국교회의 중대사들이 엮여있다. 따라서 장로님의 인생을 회고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한국교회 역사의 단편을 회고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본서 서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소리에 멈춰 시간을 내주고 지갑을 열었다. 동참해 준 많은 분들께 폐를 끼치고 신세를 져, 미안하고 고맙기 그지없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 말을 그대로 제목에 옮겼다. 나는 이 책을 모두 읽고 처음으로 돌아와 미안하다는 장로님의 글을 다시 읽곤, 자연스럽게 한 마디를 되뇌게 된다. “장로님, 저의 시간과 돈을 보태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본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언론인으로서 살았던 삶, 가정과 교회에서 감당한 일들, 100주년 협의회의 설립과 발전. 450페이지 분량에 걸쳐 기술된 그의 삶의 순간들은 어느 것 하나 가볍거나 무의미한 것이 없었다.

 

그는 기자의 소명을 갖고 일한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중앙일보, 세계일보, 경향신문을 거치면서 구미특파원, 정치부장, 외신부장, 편집부국장, 편집국장과 이사를 거쳐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의 다양한 기자경력에는 여러 분야에 걸친 중요한 기사들이 있었다. 미국 한인들의 실태, 월남 파병, 홍수, 기아, 농촌의 실태와 진흥정책, 군사정부 비판, 삼분 폭리 사건, 사카린 밀수 사건 등이 그것이다. 그가 가진 소명 의식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라는 권유도 거절할만큼 투철한 것이었다. 1988, 한국기자협회보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대다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권력의 유혹에 두 손 들었지만 강한 유혹을 뿌리치고 연론계를 고수한 인사들도 있다. 송효빈 씨, 김경래 씨가 이들로, 김경래 씨는 박 대통령이 감투를 주겠다고 요청했는데도 거절한 유일한 언론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가진 투철한 기자 정신도 19805, 신군부에 의해 꺾이게 되었다. 전두환 국보위원장과 육사 11기 동기생이었던 이진희 씨가 서울신문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강제 해직된 것이다.

 

또한 그는 가정과 교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집안은 신앙심이 독실하였는데, 특히 장로님의 외가는 경남 지방에 기독교가 전래되었을 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의 외조부였던 하강진은 호주 선교사였던 손안로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영수(領袖)가 되어 집 마당에 교회를 세웠던 것이다. 그 때가 1916년이었다. 차재선 전도사님의 따님인 차은희 권사와 혼인한 그는 장인과 의형제였던 이인재, 손양원 목사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그의 가정은 검소하였고, 이웃들에게는 너그러웠다. 그는 26여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푼 은혜일 것이다. 다섯째 원미, 여섯째 원주, 일곱째 원희는 원트리오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는 특히, 출옥성도들을 믿음의 스승들로 모시고 교회 중심의 신앙을 견지하며 살았다. 특히 1961, 흥천교회가 새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빌린 사채를 갚기 위해 그의 전재산이었던 집을 팔아 교회에 헌금한 것은 그의 신앙을 단적으로 나타낸 사건이었다. 그는 고신의 지도자였던 한상동 목사님이 초량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한 시절부터 삼일교회에 옮겨가서도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는 1953, 서울로 상경한 이후에도 계속 고신교회의 장로로 신앙을 고수하였다. 그는 기자직에서 강제 해직 된 후, 사업을 크게 시작하려고 한 무렵 한경직 목사와 함께 연합사업을 시작하였다. 김경래 장로님은 한상동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교회의 어른이시다. 그는 고신교단과 백주년기념사업과 더불어 국제기드온협회, 한국기독실업인회, 한국매스컴선교회, 사랑의쌀나누기운동,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도 깊게 관여하며 일하였다.

 

그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각하께서도 예수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는 대통령을 위한 기도모임을 발족시켰고, 그 모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가 한국교회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이룬 큰 업적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업적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추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경래 장로님은 작은 일에 순수하게 봉사하고 열심을 낸 것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남긴 충성된 종에게 동일한 상급을 주셨다.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살더라도 모두가 김경래 장로님과 같은 성과는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동일한 순수성과 열심을 갖고 일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회고록을 통해 순수한 신앙의 열정을 본받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 회고록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국사회에서 신앙을 갖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참고해야 하는 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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