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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윤표 목사님 사료 기증

조회3,657 2013.08.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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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오윤표

 

-          오병선/오윤표 목사 일녀 삼남 셋째. 미시간주립대에서 언론학을 공부하고 있다. 기사는 고신역사기념관에서 유품을 기증받으며, 기증자에게 요청한 것이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불쌍한 사람들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향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추구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영화, 만화, 뮤지컬 등으로 재현되고 있다. 나의 아버지-오윤표 목사님(1944.8.22.-2013. 6.22.) 장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뮤지컬 레미제라블(2012, 후퍼 감독) 보게 되었다. 용서하는 이와 용서받은 , 사랑과 정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시간 동안, 영화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 

주인공인 장발장은 하나를 훔친 죄로 구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출소한 이후에 받아주는 곳이 없어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미리엘 주교로부터 용서를 받는다. 장발장은 자신의 죄가 옭아매던 과거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구원받은 자로 새삶을 살게 된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박은(5:20)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러하듯, 오윤표 목사의 삶은 용서받은 장발장의 삶이었다. 기차와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친구가 되어 항상 복음을 전했고, 자녀들 학교 선생님들, 구두 닦는 , 주변에 개업한 식당 주인까지, 모두 전도의 대상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가문의 이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제사 때마다 축문을 만들어 읽었고, 엄격한 유교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문중의 유일한 대학생으로 가문을 일으킬 기대를 받았으나, 서울에 와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후에 목사가 되었다.

그가 예수쟁이가 되어 고향에 내려왔을 , 가족들의 실망과 어른들의 질책은 이만저만한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가정이 구원받는 기적이 일어나서(16:31) 조부모님은 시골 교회당을 날마다 돌보는 집사로 지내다 돌아가셨고, 현존하는 고모들도 예수님을 믿고 집사와 권사로 섬기고 계신다. 나는 죽을 고생을 하며 신앙을 얻었다. 너희들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믿어라.라고 하셨던 아버지 말씀대로 우리집 가훈은 나와 집은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이다. 죄인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인의 삶을 살다간 장발장처럼, 오윤표 목사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했다. 천국 가기까지, 남은 우리도 그렇게 것이다.

은쟁반을 훔친 장발장이 잡혀오자, 은촛대까지 챙겨주며 인자한 미소로 기억하게 형제여,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이 되게나. 하던 미리엘 주교도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연배도 비슷하고, 말씀을 전하는 업을 가졌다는 것에서 더욱 그렇다. 오윤표 목사는 그러한 베푸는 삶의 본을 보여주었다. 장애인 선교회나 시골 교회 등에 집회를 다녀오면, 사례를 받아오기는커녕 가져갔던 여비까지 모두 헌금함에 넣고 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월드비젼을 통해 다섯 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기도했고, 한센인 마을(나환자촌)에서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환우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네들이 처음으로 우리를 사람으로 대해준 목사라며 달걀 트럭을 보내준 적도 있다.

돌아가시기까지 선배 목사님들과 은퇴목사님들께 손으로 카드를 일년에 , 부활절과 성탄절에 보내셨고 날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지금은 수도권 노회가 매년 오월에 함께하는 은퇴목사 위로연은 오윤표 목사가 혼자 하던 것이 서초동교회, 남서울 노회를 통해 확대된 것이다. 그는 크고 작은 교회를 시무하면서 교인들과 함께 울어준 목회자였다. 멀리서 와서 울고 가는 교인에게 없어 결혼 반지를 쥐어 보낸 일은 27 동안 어머니도 모르고 계셨다. 영혼이 있는 승부로 치열했던 목회의 흔적은 그의 편지글인 < 사람, 사연>이나 신학교에서 교재로 자주 쓰이는 <심방의 이론과 실제>, 그리고 노년의 목회자가 젊은 목회자를 위해 <목사가 목사에게> 나타나 있다. 요즘 사람들은 가난하면 불행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난했어도 행복했다. 은쟁반을 잃고 은촛대까지 내어준 미리엘 주교는 불행했을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삶을 보여주신 아버지께 감사한다.

<레미제라블>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왕정을 거부하고 공화정을 그리며 무려 십구년 동안 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작가에게 망명의 시기는 그러한 시기는, 장발장의 감옥만큼이나 불안한 시기였다. <레미제라블>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다. 오랜 망명생활과, 명의 자녀가 죽는 아픔을 겪기도 빅토르 위고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남긴다. 영혼의 진심 어린 기도를 바란다. 하나님을 믿는다.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오윤표 목사는 천국을 바라는 글쟁이였다. 그가 스무 동안 사용했던 서초동교회 서재는 설교를 준비하는 곳이었고, 시를 쓰는 곳이었고, 책을 쓰는 곳이었다. 문학을 전공한 이답게, 성경과 신학서적은 물론 문학, 예술, 정치, 사회, 역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 했고 결과는 고스란히 설교와 저서에 묻어났다. 쉬운 전개와, 상황에 맞는 풍부한 예화들은 설교를 듣는 이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시인이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교회에서는 교단행사나 절기 때마다 기독교보 등에 시를 썼고, 교단을 대표해서 한국찬송가위원회 가사 분과에서 일했으며, 월간 고신에 장기간에 걸쳐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처음 <기독교를 무엇인가> 비롯해 다섯 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투병기인 <그래도 하늘 푸르다>, 장례 절차에 관한 <기독교인의 복된 삶과 죽음>,<엘리야의 기도> 불치병과 싸우는 중에, 망부가인 <머물다 자리이기에>, 편지글< 사람, 사연>, 목회 지침서인 <목사가 목사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글이다. 빅토르 위고의 고난이 레미제라블을 만들어냈듯, 순탄치 않았던 오윤표 목사의 생애는 후배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여운을 남겼다.

장발장의 숨이 멎을 , 그는, 먼저 하늘로 가련한 여인-폰틴이 함께 가요. 당신을 결박하지 않을 곳으로. 모든 슬픔을 뒤로 남긴 주의 자비에 당신을 맡기세요. 하며 그를 인도한다. 먼저 하늘 나라에 가신 어머니도 그렇게 천국을 노래하며 아버지를 영접했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주의 자비에 맡겨졌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빛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의 노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어둠은 결국 끝나고 태양이 밝아오리니, 주의 정원에서 우리 다시 자유롭게 살리라. 우리와 함께 하겠나? 굳세게 길을 가겠나? 내일이 온다! 불쌍한 사람들(Les Miserables) 표정은 주의 정원을 바라보기에 환희로 빛이 난다. 그들은 결코 불쌍함은 사라지고 행복이 가득하다. 영화는 장발장과, 이상향을 그리다 운명을 달리한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끝이 난다. 땅에서 <오윤표>라는 영화는 끝이 났지만, 그가 이웃과 함께 바라던 천국이 실재하기에 이것은 끝이 아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굳게 길을 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주의 정원에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뵙겠습니다! 모든 것을 기획하고 감독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한다.

 

첨부사진해설: 지난 8 3, 오윤표 목사님 유품기증 기념. 오윤표 목사는 작년 11 13, 고신역사기념관에 사료를 기증하며, 후에 자신이 가진 사료를 역사기념관에 기증할 의사를 밝힌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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